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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링 강좌

ORPG 팀의 기획과 운영에 대하여.

by 애스디


안넥스칸님의 초보 OR 마스터를 위한 어드바이스를 보고, 저도 생각해오던 것 몇 가지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지난 [초보자를 위한 ORPG 가이드]는 플레이어로서 참여를 위한 가이드지만, 이번 글은 마스터로서 OR 팀을 운영할 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ORPG 환경"에서 생기는 문제와 난점을 짚고,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의 얘기입니다. 




1. ORPG 팀의 난점: 쉽게 모인 만큼, 쉽게 흩어진다.


ORPG의 가장 큰 장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은 역으로 "쉽게 모인 만큼 쉽게 깨진다"는 겁니다. 냉정하게 말해 서로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 관계에 어떤 구속력과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즐거운 RPG 플레이를 위해서 함께 모였다는 목적, 그 하나 뿐이지요. [당신의 RPG가 실패하는 3가지 이유]에서도 "성실성"을 거듭 강조한 이유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ORPG 공개구인을 한다면 어떤 사람들이 모일 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약속된 시간을 신경 안쓰고 지원했다가 시작도 전에 빠지는 일도 있지요. 사전 통보라도 하면 나을텐데 말 꺼내기 싫다고 그냥 잠수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인터넷 환경이란 게 그렇습니다.


더불어 전혀 다른 배경과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플레이 중에 소통하고 뜻을 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텍스트 채팅으로 소통하는지라 충분히 서로 얘기하기도 어렵고, 진의를 오해해서 갈등이 커지는 일도 흔합니다. 불만이 있어도 터놓고 얘기할 기회도 잘 없고, 문제가 누적되다가 팀이 터지기도 쉽고요. 


이런 조건 아래에서 팀을 끌어가는 것이, 대개 마스터의 책임입니다 (마스터 외의 팀 매니저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못 봤네요...). 결국 팀웍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마스터가 플레이를 책임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최소한의 재미와 질을 보장하려 하는 것입니다. 재미가 있다면 팀이 지속되고 그제서야 팀웍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2. ORPG 환경에서 팀을 만들고 꾸려가려면...


ORPG, 특히 단편 플레이에선 마스터가 플레이의 질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아래는 그를 위한 조언입니다. 최고의 플레이는 안되더라도, 최소한의 질을 추구하는 방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 마스터가 플레이의 방향을 제시한다.

어떤 시스템을 쓰고 어떤 배경에서 무슨 플레이를 할지, 마스터가 미리 정하고 뚜렷이 제시하는 쪽이 좋습니다. 그래야 그 바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그 틀 안에서 서로의 욕구를 조율하는 게 가능합니다. 모두의 의견을 모아서 출발하기엔 ORPG 단편 플레이는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 전용룰 >>> 범용룰

이 점에서 [던전월드]나 D&D/패스파인더, [누메네라] 같은 특정 장르/배경에 특화된 룰을 쓰는 게 훨씬 좋습니다. OR에서 범용룰을 쓰는 건, 시작부터 가시밭길입니다. 범용룰을 쓴다면, 마스터가 어떤 장르, 배경세계로 어떤 캐릭터들이 나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 확실한 구상을 갖고 이를 전달해야 합니다. 특히 캐릭터 제작에 있어서 이런 방향성을 충분히 지켜야 하고요. 경험이 많지 않다면 왠만하면 피하세요.



2) 룰 적용에 자신감을 갖는다.

플레이 중에 분쟁, 특히 룰 관련 논쟁이 생겼을 때는 마스터가 빠르게 끊고 정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불필요한 토론으로 1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일도 흔하고, 플레이 흐름은 완전히 망가지기 일쑤입니다. 자신감 있게 여기선 이렇게 처리하겠다- 하고 넘어가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룰을 잘 파악하는 것이 좋고요. 되도록 자신이 플레이해봤고 자신 있는 룰로 마스터링을 하세요. 



3)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

OR 팀이 이어지기 위한 근본 조건은, "플레이가 재미있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흥미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멋진 롤플레이와 아이디어로 플레이를 살려주면 더없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최소한의 재미를 보장할 준비를 해두세요 (안되면 전투라도 벌이세요 ;;;)이전에 얘기했듯이 스스로 자신있을 만큼은 '준비'해두는게 좋습니다. 



4) 플레이 시간을 확실히 정하고 관리한다.

OR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참가자에게 모두 몇 시까지 플레이가 가능한지 사전에 확실히 묻고 약속해두세요. 플레이가 아무리 망해도 그 시간 안에 끝난다는 보장이 있으면, 그동안은 집중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정했으면 그 안에 플레이가 마무리될 수 있게 관리하세요. 경우에 따라 길어지는 장면을 끊고 넘어가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5) 피드백을 갖는다.

플레이 시간을 정할 때, 마치고 후담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정하세요. OR은 플레이 중에 평가나 다른 의견을 나누기가 어렵기 때문에, 피드백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플레이 중에 이런 논의를 할 수 있으면 좋지만, 대개 어렵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서로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나누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마스터로서 당신의 성장에도,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성장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3. 다른 해법은 없는가?


ORPG에서 좋은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요? 어떻게 하면 성실한 팀원을 만나고 좋은 팀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 성실한지, 나랑 잘 맞는지 아는 수는, 같이 플레이해보는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럼 다시 되풀이되는 문제가 아니냐고요? 


* 단편을 해보고, 잘 맞으면 장편으로 확장한다.

: 단편 플레이는 부담없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편 플레이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이들 중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중장편 팀을 하는 쪽이 좀더 안전한 선택입니다. 


* 믿을만한 사람을 팀에 넣어둔다.

: 자기가 같이 해왔고 신뢰하는 팀원이 1-2명이라도 있으면, 플레이의 부담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최소한 그 사람은 자기를 도와줄 거라고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팀 분위기를 만들고 새 팀원을 이끄는데도 이런 동료는 도움이 됩니다. 


* 구인 단계에서 최대한 걸러내고 검증한다.

: 구인공고에서부터, 자신이 어떤 플레이를 할지 뚜렷이 밝히고 그에 동의하는 사람을 모으는 게 좋습니다. 그게 팀의 기본 합의가 되어주니까요. 문제되는 행동이 있을 때, 그에 비추어 제재할 수도 있고요. 지각/결석에 대한 페널티를 확실히 정하고 연락처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구속력이라도 둘 수 있겠지요. 그보다 좋은 건, 구인 단계에서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걸러내는 거고요.


* ORPG 전문 커뮤니티를 활용한다.

: 서로 한두 다리 건너면 아는 커뮤니티라면, 익명성의 방패에 숨는 것을 그나마 줄일 수 있습니다. 더불어 플레이해서 아는 사람을 늘려가고 유지하기도 좋고요. 현재 활동이 활발한 OR 전문 커뮤니티는 다음 등이 있습니다 (알려주시면 추가하겠습니다-). 대개 IRC 등 팀 채팅방도 상시 운영합니다.


  - ORPG 인력사무소: 격의없는 분위기에 비교적 유동인구가 많은 듯. 자체 채팅방 운영.

  - Hunter Hall: 모험기획국 룰 위주 커뮤니티로 최근엔 다른 룰도 돌아갑니다. 한IRC #hunterhall

  - 창조의 회랑: 패스파인더 RPG를 전문으로 다루는 ORPG 카페입니다. 한IRC #창조의회랑

  - Black Rose: 소재에 구애받지 않는 성인지향 OR 커뮤니티입니다. 카페 채팅방 사용.




맺음말


마스터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꼭 고전적인 방식대로 마스터가 준비한 스토리(시나리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편 시나리오를 어떻게 운영할까?]에서도 다뤘듯이 마스터가 사전 준비를 하더라도 훨씬 유연한 형태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던전월드의 [국면]처럼요). 다만 플레이의 기본 지향과 출발점은 마스터가 깔아두는 쪽이 단편 팀 운영에 편리할 거에요.


OR은 마스터에게 힘겨울 때가 많고, 그럴 때도 버티는 힘이 필요합니다. [길드타운 난민대책위] 캠페인을 할 때도, 막막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고요. 왠만하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세요. 포기하지 않으면 실력은 늘게 됩니다필리더님의 [의룡] 짤방으로 마치지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