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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링 강좌

마스터링의 기본 원리: 플레이가 정체되지 않으려면.

by 애스디


마스터를 따로 두는 TRPG 시스템에서, 마스터의 기본 역할은 "PC가 행동할 극적인 상황을 내놓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여기에서 자기 PC가 어떻게 행동할지 선언하고, 마스터는 그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서술하는 식으로 플레이가 진행됩니다. 플레이어가 PC를 움직여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플레이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멈춰버릴 것입니다 (혹은 마스터 혼자 일방적으로 진행시켜가는 이야기가 되든가요). 


여기서는 플레이를 진행하며 각 장면을 내놓을 때 유의해야 할 기본사항을 짚어보겠습니다. 특히, 플레이가 원활히 흘러가지 않고 정체될 때, 그 이유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PC가 움직일 동기가 있어야 한다.


PC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면서 플레이가 진행되기 위해선, PC들이 행동에 나설 동기(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주인공인 PC들이 목적을 갖고 나서서 행동해야 비로소 이야기가 생명력을 갖습니다. PC들이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주저앉아 있다면, PC들이 움직일 동기가 부족한지 점검해보세요.


PC가 동기를 갖는 데는 A) 마스터가 사건을 일으켜 해결할 문제를 내는 수도 있고, B) 캐릭터 자신이 가진 동기를 찾아 끌어내는 수도 있습니다. 활극 모험물에선 주로 A)처럼 마스터가 PC들이 처리해야 할 문제를 던져서 이를 해결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시나리오의 도입부가 PC들이 함께 행동할 동기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지요. 한편 캐릭터 개개인을 살려내는 데는 B)와 같이 캐릭터 고유의 동기와 갈등을 이용하는 쪽이 더 좋을 터입니다. 어느 쪽이든 플레이 속에서 PC가 마주하는 상황은 이런 PC의 동기와 맞물려 행동을 촉구해야 합니다. 


계속 PC를 위기로 몰아붙이며 행동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플레이가 정체될 때는 괜찮은 방법이지만, PC가 계속 "쫓기는" 입장에 머무르면 너무 갑갑하거나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그보단 PC들이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문제를 풀어가도록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쪽이 좋습니다.


* "PC의 동기 vs. 플레이어의 동기": 엄밀히 나눠보면 PC가 지닌 동기와 플레이어 자신의 동기를 나눠볼 수 있습니다. PC가 어떠어떠하게 움직일 동기가 있더라도, 플레이어가 그런 전개를 꺼리거나 관심이 없다면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있지요 ("난 그거 하기 싫은데?"). 반면 플레이어가 원하는 행동에 PC가 가진 동기가 어울리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나누자면, 참가자들이 어떤 진행을 하고 싶은지 플레이어의 동기가 가장 중요하고, PC의 동기는 필요하면 그에 맞춰갈 수 있겠지요 ("여기선 잠겨진 지하실로 내려가야 재미있을 것 같아!"). 




2. PC가 행동할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PC가 해결할 문제는 뚜렷하지만 플레이어가 이를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무지 가능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손을 놓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스터로서 PC가 행동할 상황을 내놓을 때는, PC가 지닌 능력으로 이를 풀어낼 수 있도록 가능한 선택지를 열어줘야 합니다. 마스터에겐 이런저런 가능성이 보이더라도, 플레이어의 시점에선 알아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하세요 (특히 마스터가 준비한 시나리오의 내막을 플레이어가 모를 때 일어나기 쉽습니다). PC에게 가능한 행동의 예를 제시해도 되고, 상황 속에서 PC가 대응할 수단을 직접 내보여도 좋습니다 (만나볼 사람, 가볼만한 곳, 뒤쫓을 단서 등). 


진행이 막혀 있다면, 마스터 쪽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진행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도 좋습니다 (일종의 마스터 액션/개입이지요). 특히 플레이어에게 어떤 점이 곤란한지 묻고, 무슨 일이 터지면 좋을지 알아내도 좋습니다. PC가 행동할 여지가 있는 게 바람직하지만, 반드시 캐릭터를 통하지 않고도 전개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3. PC의 행동(플레이어의 선택)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게 한다.


마스터는 PC의 행동에 따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서술하게 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무슨 결과를 낳는지는, 마스터가 준비한 설정과 시나리오를 참고하거나, 룰을 적용하거나, 혹은 극적인 전개 상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쪽을 택하게 되지요.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일 재미 없는 결과는, 아마 주사위를 굴리고 "어. 실패네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쪽이겠지요. PC의 행동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상황을 바꿔 놓았는지 서술하세요. PC의 유능함이 빛날 기회입니다. 실패한 경우에도 뭔가 그에 따른 문제나 상황 변화가 잇따르는 쪽이 훨씬 흥미롭습니다.


PC가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 자체가 드라마틱한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인물이나 세상에 중요한 것이 걸린 갈등이나 딜레마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장면에서는 각각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뚜렷이 부각시키고, 결정을 내렸을 때 그에 따르는 결과를 극적으로 강조해주세요. 결과적으로 캐릭터가 어떤 인물로 드러나고 변모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겠지요.


PC의 행동(플레이어의 선택)에 중요한 것이 걸려있다고 느낄수록, 극적인 긴장이 높아지고 흥미로운 장면이 됩니다. 이렇게 행동의 결과를 중대하게 만드는 데는, PC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동기를 파악하고 반영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또한 처음엔 사소해 보였던 결정이라도, 추후에 예상치 못한 여파를 일으키는 경우도 인상적입니다. 어떤 일이든 PC의 선택과 그 결과는 잘 새겨두고 기회가 생길 때 활용하면 예기치 못한 복선 같은 임팩트를 줄 수 있습니다 ([흐름을 타는 마스터링] 참조).




맺음말


마스터링을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PC가 주인공으로서 행동할 극적인 상황"을 내놓고 그에 대응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듣고 이를 반영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준비하거나 룰을 익히고 적용하는 것도, 플레이어에게 흥미로운 상황을 제시하고 PC의 행동을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스터링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흥미로운 상황(과 선택지)을 내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 많은 점이 풀리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플레이어가 PC로 어떻게 행동할 지 헤매며 정체된 상황에서는, PC가 움직일 동기와 행동의 여지가 있는지 짚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