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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링 강좌

단편 시나리오를 어떻게 준비할까?

by 애스디


그간 애스크픔(ask.fm/the_rpgist)에서 단편 플레이를 어떻게 준비하고 운영할까에 대한 질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선 단편 시나리오를 어떻게 준비하고 운영하면 좋을지, 제 나름의 해법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 참고하면 좋은 글: RPG 연구실 9회 - 단편 시나리오의 특징과 의의 1편 / 2편.




1. 시나리오를 얼마나 준비할 것인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단편 플레이는 말 그대로, TRPG 모임 한 번(세션 1회)으로 완결되는 플레이를 말합니다. 특히 기승전결의 구조와 완결성을 갖춘 플레이를 위해 마스터가 시나리오를 준비해오는 경우를 가정합니다. 그냥 즉흥적으로 가볍게 놀고 이야기의 완결성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면 별 고민할 게 없겠지요. 던전월드의 [첫 세션] 이런 식의 가벼운 테스트 플레이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의 장편 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준비 성격이 크니까요.


그럼 단편 플레이용 시나리오는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요? "마스터가 자신있게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을만큼"이면 됩니다. 상용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들도 쓸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갖추고 있지만, 혼자 쓸 거라면 자신이 진행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준비해도 됩니다. 시나리오의 설정과 플롯이 정리되고 필요한 데이터를 갖춰 자신감을 가졌을 때, 진행하면서 여유를 갖고 애드립으로 대응하기도 쉬울 거에요.


시나리오 구성의 기본은 기-승-전-결의 흐름입니다. 자신이 어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핵심을 잡고 이야기 흐름의 완급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의식적으로 기승전결을 염두에 두며 각 단계를 준비하고 시간 배분도 신경 써두세요. 아래에선 각 단계별로 유의할 점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 단편 시나리오의 준비.



(1) 도입부: PC가 처한 상황과 행동 목표(동기)를 명확히 제시한다.


도입부는 PC가 처한 상황과 함께 플레이 속에서 움직일 동기를 부여하는 장면입니다. 이야기에 "시동"을 걸고 원동력을 불어넣는 것이지요. 참가자들이 PC가 처한 상황에 빠르게 몰입해서 스스로 동기를 갖고 움직이는 게 도입부의 목적입니다. 


시나리오 속에서 움직일 동기를 뚜렷이 하기 위해선, PC를 사전에 미리 만들어서 제공하는 쪽이 좋습니다. 이러면 이야기 속에서 PC가 가질 관점/입장을 조율할 수도 있고 PC 개개인에게 맞춘 장면을 준비하는 데도 수월합니다. 캐릭터시트까지 완성하지 않더라도, 시나리오 시작 시 PC의 배경과 동기를 담은 [핸드아웃]을 주고, 거기에 맞춰서 캐릭터를 짜오게 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예: PC1 - 전사. 드워프 왕가의 먼 후예. 철왕국의 유산을 발굴해 옛 영광을 되찾는 것이 목표다.). 


도입부는 마스터가 시작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극적인 연출과 묘사를 쏟아넣을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PC와 그 주변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세요. 특히 단순히 NPC의 입을 빌어 퀘스트를 전달하는 식보다, PC들이 직접 문제상황을 겪으며 시작하는 쪽도 좋습니다. [피의 대리전], [Memory] 같은 예를 참고해보세요.



(2) 전개: 이야기의 무대를 제한해둔다.


전개 파트는 도입부에서 동기를 갖게 된 PC들이 행동에 나서고 클라이맥스(결전)를 향해 다가가는 과정입니다. [마스터링의 기본 원리]에서 얘기한 대로, PC가 움직일 동기를 갖추었다면 그에 따라 행동할 여지를 열어두면 됩니다. 다만 단편인 만큼 PC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갈 지 대략의 틀과 예상되는 전개를 고려해야겠지요.


여기에 유용한 테크닉이 이야기의 시공간적 무대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D&D의 던전은 이렇게 시공간을 제약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굳이 던전이 아니더라도 시나리오 내용에 따라 적절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경로가 정해진 로드 무비라거나...). 어떻게든 PC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자연스럽게 좁혀두고 플레이어들이 이를 쉽게 파악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 A랑 B가 있어요.").


또 하나 유의할 것은, 플레이어들이 단서를 놓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상황입니다. 특히 정보 수집과 조사 과정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맬 가능성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시나리오를 접하는 시점은 마스터랑 다르다는 점을 유의하세요. 시나리오 준비 단계에서 진행이 막혔을 때 이야기를 진행시킬 이벤트나 힌트 등을 준비해두어도 좋습니다 ([피의 대리전]의 사례를 참고해보세요).



(3) 절정: 클라이맥스를 연출한다.


절정은 시나리오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입니다. 최후의 결전, 보스전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전투 씬이라면 긴장감 있고 흥미로운 결전이 되도록 데이터와 연출을 준비해두세요. 중대한 결정(딜레마)이나 논쟁이 클라이맥스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PC들이 가진 능력과 면모를 아낌없이 선보이고 모든 것을 쏟아내는 장면이 되도록 안배해주세요 (소외되는 PC가 없도록 유의합시다). 


앞서 전개 단계에서 PC들이 했던 선택과 복선이 누적되어 절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도 훌륭한 연출입니다. 이 점은 [十五日 五將 一道] 등을 참조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4) 결말: 이야기의 여운을 남긴다.


결말에선 PC들이 플레이 속에서 움직인 결과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캐릭터 각각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다룹니다. PC들이 세상에 끼친 영향과 성과를 강조하면 좋고요. 더불어 플레이 속에서 드러난 캐릭터의 성격, 모습을 살려서 각자의 에필로그 씬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단편은 이후의 전개를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결말에서 세계의 존망이 갈리거나 PC들이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등 극적인 장면이 나와도 됩니다. 장편에선 할 수 없는 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셈이죠. 이렇게 PC들이 어떤 인물인지 나타낼 기회를 준다면, 결말에서 한층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피의 대리전]과 RPG의 계절 시나리오 [구름 뒤의 별]을 참고해보세요.




3. 시나리오를 보다 유연하게 운영하려면...


단편 시나리오의 난제는, 마스터가 시나리오를 준비해오면서도 어떻게 플레이어들의 참여를 유연하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살펴보자면, 전개와 결말 단계가 행동의 자유를 폭넓게 주기 좋은 부분입니다. 전개 파트에서 플레이어들이 창의적으로 해법을 만들면서 절정-결말에 이르도록 배려하면 좋겠지요. 앞서 얘기했듯이 결말에서 PC가 맞는 선택 역시 극적인 효과가 큽니다.


전개 이후 부분을 좀더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법으로, [포도원의 개들]이나 [던전월드]처럼 갈등과 문제를 내포한 무대를 준비하고 PC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던전월드 마스터 강좌 #2. 국면을 활용하자] 참조). 다만, 단편이니만큼 주저하지 말고 갈등과 문제를 부각시키고 PC들이 결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PC/NPC를 막론하고 여러 인물이 서로 다른 목표와 가치를 갖고 충돌하는 상황이 이런 식으로 다루기 좋습니다.


한편, 단편 시나리오를 유연하게 운영하자면 다양한 가능성과 연출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준비해둔 장면도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들여 준비한 장면일수록 그쪽으로 전개를 유도하고픈 마음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자기가 준비한 장면보다 플레이어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전개가 더 몰입도 높고 풍성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세요.([양날의 칼로서의 '디테일'] 참조).





* 맺음말


단편 플레이에서 시나리오 준비가 필요한 것은, 1) 이야기의 시작점과 무대를 제공하고, 2) 진행에서 최소한의 틀(안전장치)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봐요. 시나리오 준비를 통해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그 바탕 위에서 플레이어들의 참여를 살린다면 좋은 플레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스터링은 경험이 필요한 만큼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시고요. 그러기 위한 단편 플레이니까요.


이외에 다른 궁금한 점이나 의견 있으면 또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p.s. 다른 사람들이 만든 시나리오를 살펴보는 것도 공부가 될 거에요. 다음 링크들도 참고해보세요~. 국내 출간된 누메네라 룰북과 자료집에 실린 시나리오들도 훌륭합니다. 


- Session: 단편 플레이에 관한 글들, 시나리오 모음.

- 제1회 TRPG 시나리오 컨테스트

- 고민해결! 마법서점(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