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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강좌/칼럼

성장하는 RPG인의 조건.

by 애스디


RPG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취미활동입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RPG를 해오면서, 중간에 쉬거나 매너리즘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엔 다시 붙잡게 되더라고요. RPG가 너무너무 좋아서요.


하지만 RPG는 공짜가 아닙니다. RPG는 만화/영화/게임/독서 등 다른 수동적인 취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RPG를 잘 하려면 대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RPG에는 기꺼이 그런 투자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선 RPG를 잘 하려면 어떤 것이 요구되는지, "RPG인의 조건"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배움


RPG를 잘하려면 배울 것이 많습니다. RPG 자체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능동적인 취미활동은 다 배우는 과정이 따릅니다. 그림 그리기, 노래, 악기 연주, 바둑, 스포츠, ... 모두 잘 하려면 많이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RPG도 마찬가지입니다.


1-1. 룰과 설정에 대한 지식.


먼저 RPG 룰을 잘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룰을 습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룰의 지향성을 파악하고, 플레이에서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가야 합니다 (로키님의 [RPG인의 게임적 능력] 참조). 또한 플레이를 벌이는 배경세계 설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부분은 룰북과 관련자료를 읽고 플레이를 거쳐가면서 익혀갈 수 있습니다. RPG에 익숙하지 않다면, 실제 플레이를 참관하거나 리플레이를 통해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1-2. 폭넓은 교양 ("내공").


더 나아가 인물과 이야기, 배경세계를 다루는 폭넓은 교양이 뒷받침 되면 좋습니다. 여기엔 각 장르의 법칙/문법, 전형, 클리셰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 흥미로운 인물, 이야기를 만들고 연출할 수 있는 배경지식(잡학)이 포함됩니다. (천승민님의 [캐릭터에 대한 선망과 실행의 차이] 참고)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한도 끝도 없지만, 그만큼 그 자체도 재밌죠. RPG가 괜히 덕질의 결정판이 아닙니다 (응?). 요즘엔 여러가지로 오덕의 길이 열려 있지만, 가능하면 폭넓게 소통/교감할 수 있도록 폭넓은 작품을 접하고 그 근간이 되는 문학/역사/신화 등을 섭렵하면 좋습니다. 특히 다른 글에도 말했지만 다독, 다작, 다상량(多讀, 多作, 多商量)이 수반되야 합니다.


1-3. 의사소통.


결국 RPG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RPG의 성패는 사람의 문제가 됩니다. RPG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특히 보드게임 등과 달리 정해진 규칙 외에도 서로 마음을 합하고 공감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기술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건 거의 인생의 묘...에 가깝지요(속칭 "개념" 탑재). 상대방을 존중하고 내 것을 양보하고 마음을 여는 것 밖에 길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 모든 걸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RPG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을 익혀가는 과정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가 없으면, RPG를 계속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새로운 걸 배우고 활용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RPG는 끝없는 가능성이 열린 길입니다. 




2. 신의성실


원래는 '시간'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시간 약속'으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의성실'로 고쳤습니다. 왜냐면 RPG가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은 뻔히 아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건 꾸준히 시간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RPG에는 시간이 듭니다. 제법 많이 듭니다. 한번 모여서 플레이하는데 적어도 3-4시간은 잡아야 합니다.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합치면 더 길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게다가 대개 "정기적으로" 모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실정에서 꾸준히 매주 시간을 내서 모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대학생, 휴학생들만이 플레이를 활발히 하는게 괜한 일이 아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RPG를 하려면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당장은 플레이를 못하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장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더이상 RPG를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RPG를 꾸준히 계속하며 잘하게 되는 왕도는, 좋은 팀원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서로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팀원은 RPG인에게 최고의 자산입니다. 그걸 얻는 길은 간단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3. 열정: 초보자분들께 드리는 말씀.


처음에는 초보자분들을 중심으로 RPG를 잘 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나(혹은 무엇을 대가로 각오해야 하나)를 이야기드리려 했는데, 어느샌가 너무 설교 투가 되어버렸습니다. 너무 두루뭉실하게, 어렵게만 말한 거 같아서 실용적인 부분은 나중에 따로 더 이야기해보도록 할게요.


계속 어려운 얘기만 해서 많이 주눅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배우는 건 차근차근 해내가면 되거든요. 문제는 정말 배우려는 열심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RPG는 전통적으로 사람에서 사람을 통해 전수(?)되어져 왔습니다. 달랑 룰북만 갖고 마스터링을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저도 그랬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지요.


그렇다면, 왜 날 도와주는 사람이 없냐...고 한탄할 것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RPG를 계속할 사람일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RPG를 배우는 사람도 많은 노고가 들지만, 그걸 돕는 사람은 더욱 더 그렇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기존 RPG인 입장에선 자기가 잘 아는 검증된 사람들과 플레이하는 게 훨씬 편하고 효율이 좋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과 RPG를 하다가 실패하고 좌절한 경험이 있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그냥 나만 즐겁게 놀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들어왔다가 잘 안되면 휙 떠나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고운 소리 듣기 힘들겠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RPG가 어떤 것인지 처음 접해보는게 목적이라면, 일일 플레이나 단편 플레이 등에 참가하는 쪽이 좋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다른 진행되는 플레이에 참관해보거나 리플레이 등을 통해 접하는 것이 낫습니다.


팀 성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중장기 캠페인은 준비하는 사람이든 참가하는 사람이든 노력과 기대가 큽니다. 그러니까 중장기 캠페인에는 그만큼 고민하고 제대로 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팀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을 바라기에 앞서, 내가 팀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기꺼이 팀원들이 환영하고, 함께 하며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RPG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결의가 섰다면, 자신의 각오를 증명해 보이십시오. 팀 모임에 참관해보고, 룰북을 사서 읽고 익히고 연습해보고, 사람들을 알아가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다니세요. 두드리면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목마르다면, 스스로 우물을 파서라도 마시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