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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강좌/칼럼

RPG는 밴드 활동이다.

by 애스디


RPG는 무엇과 가장 닮았을까요? 게임, 연극, 소꿉놀이, 스토리텔링, ...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유희와 창작 활동에 빗대어 RPG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도 만족스런 답은 없습니다.

 

한편, 생각해보면 이렇게 RPG와 비교하는 많은 대상은 모두 스토리를 갖는 유희/창작활동입니다. RPG엔 인물과 배경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니까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게임/연극/소설/영화 어떤 것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펼치는 RPG의 역동성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제 눈을 돌려 다른 비유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길드타운 난민대책위] 플레이 등을 거치며, 저는 RPG가 다른 무엇보다도 밴드 활동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서로 취미로 모여서 함께 음악하는 그 밴드 말입니다. 고개를 갸웃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같이 살펴볼까요?

 

 

1. 창작과 감상이 동시에 이뤄진다.

 

RPG와 밴드는 창작자가 곧 관객입니다. 자신의 플레이를 자신이 즐기고 서로가 상대방의 연주(play)를 즐기는 팀 활동이죠. 물론 음악성을 갖춘 밴드는 공연을 하고 음반도 냅니다. 하지만 본질은 그 자신들이 즐기는 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RPG와 밴드 활동은 창작과 감상 자체가 동시에 이뤄집니다. 작품을 만들어놓고, 만들어진 작품을 감상하는게 아닙니다. 매순간 순간,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공감과 카타르시스의 체험이죠. 그 어떤 완성된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신, 그리고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즐기는 감동과 희열을 위한 것이죠. 물론 그런 순간이 모여 하나의 작품(캠페인)이 완성되면, 그것은 또 한 차원 높은 감격이죠. :D

 

이렇게 RPG는 그 자신들을 향한, 그리고 플레이하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공동 활동입니다.

 


2. 개인 기량이 필요하다.

 

밴드를 잘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을 쌓으려면, 힘써 연습해야 하고요. 좋은 악기를 사고 강습을 받으러 기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발품도 아끼지 않습니다. RPG도 마찬가지입니다. RPG를 잘 하려면, 더 즐겁게 하려면, 노력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RPG에 있어 개인 기량은 무엇입니까?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플레이를 만들어내고, 서로의 플레이에 호흡을 맞추는 것입니다. 룰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풍부한 배경지식과 스토리텔링 수완을 갖추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 아무리 일렉 기타의 신이라 할지라도 다른 동료와 함께 음악을 공감하고 서로 맞춰주지 않는다면, 협주자로선 빵점입니다. 독주자로선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요.

 

RPG엔 기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기량은 곧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즐기며 플레이를 보다 풍성하게 꽃피우는 능력입니다. 설령 지금 자신이 미흡해보여도 기죽지 마세요. 누구나 다 초보로 시작하며 배워가는 거니까요. : )

 


3. 신뢰와 팀웍이 필요하다.

 

자, 그럼 최고의 기량을 갖춘 연주자들이 모이면, 최고의 밴드가 탄생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팀의 연합과 성공은 단순히 개개인의 실력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자신의 팀과 맞는지 여부는 제쳐두고, 무작정 실력있는 연주자만 찾는 밴드는 없습니다. 아니, 사실 실력보다 서로 어울리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같은 이들이 한 팀을 이루는 것이고, 이들은 시너지를 통해 원래 각자의 실력보다 훨씬 뛰어난 창조력을 발휘합니다.

 

RPG의 실력도 하나로 단편화해서 나타낼 수 없습니다. 음악인들이 그렇듯이 각자 다양한 스타일, 다양한 방향의 RPG를 추구하고, 그 여정에서 서로 잘 맞는 팀원을 만났을 때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팀웍은 서로 신뢰하며 함께하는 가운데서 자라갑니다. 훌륭한 연주자는 처음 만난 이들과도 멋진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겠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한솥밥을 먹으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동료들만 하진 못하겠죠. 오랫동안 함께 한 이들끼리 좋은 플레이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서로 같은 이상을 지향하는 RPG인들을 찾고 함께 하세요. 함께 한 이들을 신뢰하고 또 신뢰를 심어주며 팀웍을 쌓아가세요. 진정한 팀웍은 한두 명의 개인 기량을 훨씬 능가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이뤄냅니다. 그리고 그게 RPG의 참맛이라 생각하고요.

 

 

 

이상으로 RPG와 밴드 활동의 유사성에 대한 글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 비유가 맘에 드신다면 한번 곰곰히 곱씹어보세요. RPG가 밴드 활동이라고 생각된다면, 밴드 활동처럼 약속을 빼먹지 말고 꼭꼭 지켜가야겠죠. 한 몸이 될 팀원도 좀더 사려깊게 뽑고, 또 서로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고요. 아무쪼록 여러분들의 RPG 생활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