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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강좌/칼럼

좋은 RP란 무엇인가?

by 애스디


1. 롤플레이(RP)란 무엇인가?


RPG를 하다보면, RP가 어렵다, RP가 좋았다 등 롤플레이(Role-play, RP)라는 말이 무척 많이 쓰이는데요. 정작 롤플레이가 무엇인지 그 개념에 대해선 여러가지 혼동과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롤플레이의 개념은, John H. Kim이 내린 "RPG의 정의"에서 출발합니다.


"내 생각에, 게임말과 RPG 캐릭터의 차이는 이 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게임을 지켜보다가 어떻게 해보라고 훈수 뒀는데, 당신이 "아냐. 내 캐릭터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답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RPG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간단한 구별이 RPG와 다른 게임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다."


In my opinion, the difference between a token and a role-played character is this: Hypothetically, a person watching the game looks over your shoulder and suggests a move, and your reply is "No, my character wouldn't do that." If this happens, or is capable of happening, then at some level you are playing a role-playing game. This simple distinction puts a world of difference between RPGs and other games. 


- John H. Kim, "What is a Role-Playing Game" 중 발췌


'이 캐릭터라면 이렇게 할 거야(혹은 이렇게 하지 않을거야)'라는 판단이 개입하는 지점이 바로 롤플레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감안하고 그것을 (게임 내의 이해득실을 넘어) 반영하는 것이 롤플레이입니다. 이게 RPG를 다른 게임과 다르게 만드는 요소죠. 여기에 기초한다면, 좋은 RP란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 인물에 맞춰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겠지요. 




2. 캐릭터 연기 vs. 롤플레이


롤플레이의 정의를, "이야기 속 캐릭터가 실제로 할법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으로 두면, 흔히 생각하듯이 캐릭터 대사를 그럴듯하게 읊고 표정과 동작을 연기하는 것이 RP의 핵심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연기와 연출이 좀더 플레이 분위기를 띄우고 캐릭터에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RP는 플레이 속에서 캐릭터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는 '의사결정'의 문제입니다.즉, 자신의 캐릭터가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고 그에 맞춰 행동을 선언하는 것이 RP의 본질입니다. 다른 참가자가 보기에, PC를 플레이어 자신의 욕망이나 계산, 변덕이 아니라, 캐릭터의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면, 굳이 직접 대사나 동작으로 연출하지 않아도 RP를 잘 해낸 것이죠.


여기서 좋은 RP의 첫번째 조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의 언행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이 뚜렷하고 구체적이라면 분명 그 인물상에 부합하는 행동을 꾸준히 나타내야 합니다. 캐릭터의 행동이 오락가락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공감하기 힘들 것입니다.


특히 다른 팀원들도 캐릭터를 이렇게 일관되게 이해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자기 생각엔 캐릭터의 동기가 뚜렷할지라도, 다른 팀원들이 이를 공감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생각하는 캐릭터와 다른 팀원들이 이해하는 캐릭터의 괴리가 커져 더욱 큰 오해만 낳을 뿐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이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이 이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중요하게 신경써야 합니다. 




3. 좋은 RP가 되려면...


앞서 롤플레이는, 이야기 속의 살아있는 인물, 그 캐릭터를 반영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자기가 구상한 캐릭터에 충실하게 몰입해서 그 캐릭터가 할 법한 행동만 하면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RPG에선 이러한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함께 어우러져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자기 캐릭터에만 충실한 것만이 아니라, 전체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의 행동이 낳을 여파를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캐릭터도 관심 갖고 이해하며 어떻게 변해갈지 생각해보아야 하고요. 즉, 좋은 RP를 하려면, 자기 캐릭터의 시점만이 아니라, 캐릭터 "밖"의 시점에서 상황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1) 이야기 진행과 PC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라.


첫번째로 자신이 생각한 대로 롤플레이했을 때, 전체 이야기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감안해야 합니다. 캐릭터 성격에는 부합하지만 이야기 진행을 지나치게 꼬거나 막다른 길로 이르게 하는 RP라면 피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민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매한 상황이라면, 이러이러하게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냐고 마스터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미리 물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대표적으로 PC가 맡을 임무를 거부한다거나, 다른 PC와 대립하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행상 무작정 대립하면 안될 상황이라면, 처음에 좀 다투더라도 결국은 어떻게든 뜻을 합쳐 같이 가는 식으로 연출해야겠지요.



(2) 가능하면 다른 PC들도 빛나도록 신경쓰라.


롤플레이와 연출에 공을 들인다면, 결국 그만큼 다른 참가자들의 주목과 공감을 바라게 마련입니다. 말그대로 하이라이트를 받고 싶은 것이죠. 다른 참가자들도 자기 캐릭터가 주목 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러니 자기 비중만 잔뜩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함께 빛나도록 신경써야 하겠지요.


캐릭터 성격과 가치관이 쉽게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은 다른 캐릭터와 대화, 특히 논쟁입니다. PC간의 적절한 갈등과 충돌은 극의 긴장도를 높여주지요. 다른 PC들이 어떤 캐릭터로 어떤 갈등 포인트를 지니는지 파악하고, 기회가 되면 서로 얽히는 지점을 찾아 살리면 좋습니다. 라이벌 관계라든가 츤데레 연인이라거나 멘토 같은 포지션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다른 PC와 관계를 만들어나가도 좋고요. 자기 캐릭터를 연출하는 데에도 그에 대응하는 짝이 있는 쪽이 훨씬 더 수월합니다.



(3) 입체적 인물을 추구하라.


아무리 개성적인 캐릭터라도 플레이가 진행되는 내내 변함이 없으면 질리기 마련입니다. 캐릭터의 현재 모습에서 어떻게 뒤바뀔 수 있는 '전환점'을 가질 수 있을지 능동적으로 신경쓰면 좋습니다 (흐, 흑화 이벤트를 이렇게저렇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잠재된 면모가 발현될 수도 있고, 큰 사건을 겪어 캐릭터 성격이 바뀔 수도 있겠지요. 이를 추구하려면, 이야기 속에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에 집중해 능동적으로 활용하면 좋습니다. 마스터 및 팀원들과 상의해 이런저런 이벤트를 넣어보자고 협의할 수도 있고요.




4. 맺음말


결국 핵심은 캐릭터 롤플레이는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재미를 위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자기 캐릭터라고 해서 자기 맘대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거죠. 팀의 이야기 흐름과 자기 캐릭터 설정이 계속 충돌한다면, 애초에 첫 캐릭터 구상/제작 단계가 엇나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보면 캐릭터를 캠페인 흐름에 맞게 잘 짜는 것이 좋은 RP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롤플레이에 대해, 특히 좋은 RP에 대해 다른 의견이나 생각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