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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링 강좌

흑역사 이야기: 소설식 시나리오 작법의 문제.

by 애스디


앞선 [자기도취형 마스터링의 폐해]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시기에 진행한 플레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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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환타지펑크 분위기의 도시 캠페인(GURPS)을 준비하면서 진행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마스터로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드는데 신경쓰던 시절 벌인 과오이지요(;ㅁ;). 어떤 시나리오였냐면,


유력한 상인 가문의 도련님이 한 기생 아가씨에 푹 빠져서 그녀를 데리고 도피합니다. 그의 충성스런 보디가드가 동행하고요. PC들은 뒷골목 인물로 각자 사창가와 상인 가문의 의뢰를 받아서 이들을 추적해 붙잡아오라는 의뢰를 받죠. 한편 이 화류계 아가씨는 사실 남자의 아버지에 원한이 있는 인물(가족이 과거 이쪽 상인 가문의 배신으로 몰락)로, 의도적으로 도련님에게 접근해 복수할 기회를 노렸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련님의 아이를 갖게 되며 마음이 흔들리던 차...라는 설정.


실제 플레이에선, PC들이 이들 도망간 남녀를 추적하면서 여자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었고요. PC들은 여자를 상회 가문에 넘겨주면서, 그녀가 원수를 암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걸로 결말이 났습니다.



문제는... 결국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실질적으로 복수심을 품은 기녀 NPC라는 점입니다. 애증으로 얽힌 NPC들의 이야기에 PC가 관객이자 외부인물로 끼어든 것에 불과하단 것이지요. 시나리오의 핵심이 처음에는 플레이어에게 숨겨진 내막, 즉 NPC의 사정을 알고 놀라는 장치에 의존하기 때문이고요.


이상적으로는 PC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텐데, 플롯을 정교하게 짤수록 이야기의 중심은 NPC가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마스터 주도로 짜는 시나리오, 특히 단편은 그렇게 되기 쉽긴 합니다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좀더 이야기의 중심을 PC에게 두는 쪽을 고민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p.s. 한편 놀라운 점은 이 시나리오 하나를 8회에 걸쳐 플레이했다는 것 (ORPG긴 했어도...). 거기다 결말은 아가씨의 복수가 암살 미수로 그치는 암울한 엔딩... 과거의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거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