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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입문

초보자에게 좋은 TRPG는?- 룰의 성향을 알아보자!


TRPG 입문자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 "초보자인데 어느 룰이 좋을까요?" 입니다. 사람마다 추천하는 룰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이 글에선 초보자가 룰북을 선택할 때 참고할 기준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1. 초보자에겐 무슨 룰이 좋나요?


- 플레이어로 시작한다면... 

: 초보자를 받는 플레이라면 무슨 룰이든 괜찮습니다! 팀의 도움을 받고 룰북을 읽으면 못할 룰은 없어요. TRPG 룰은 대개 책 1권 분량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 익힐 내용은 일부분입니다. 그러니 룰이 얼마나 어렵나를 따질 필요는 별로 없습니다. 그보다 자기한테 재미있고 잘 맞는 룰인지가 중요해요. 어떤 장르와 플레이 스타일을 위한 룰인지 미리 알아보세요! (아래 참조)



- 마스터로 시작한다면...

: 첫째로 자신이 플레이어로 해본 룰이 가장 편합니다. 플레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으로 아니까요. 그래도 플레이의 정석은 룰북에 있으니 꼭 룰북을 꼼꼼히 읽어보세요.

  새로운 룰을 처음 익힌다면 좀 부담이 됩니다. 그래도 플레이에 필요한 내용은 룰북에 다 나와 있습니다. 룰북을 잘 읽고 견본 시나리오나 리플레이를 찾아보면 대충 감이 올 거에요. 결국 마스터도 자기가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알맞은 룰을 찾는 게 최우선입니다.





2. TRPG 룰의 성향을 나눠보자. 


TRPG 룰은 각각마다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선 RPG 시스템의 성향과 특성을 분류하는 기준을 얘기해볼게요. 서로 다른 룰을 비교하고, 자기한테 맞는 룰을 찾는데 참고하세요!



(1) 마스터가 준비한 스토리 위주로 진행되는가?: [올드 타입] vs. [뉴 타입]


Dungeons & Dragons를 위시한 전통적 [올드 타입] 룰은 플레이 진행이 마스터가 준비해둔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마스터가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틀을 잡아놓고, 플레이어는 주어진 장면에서 자기 캐릭터를 움직입니다. 컴퓨터 게임으로 보자면 마스터가 제작자이고 플레이어가 유저(게이머)인 것이죠. 


이런 [올드 타입] 시스템은, 마스터가 원하는 대로 스토리를 준비하고 펼쳐내기에 유리합니다. 대신 준비한 시나리오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면 곤란해지고요 (이걸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올드 타입] 마스터의 역량이었지요). 그만큼 마스터의 권한과 책임이 크고요. 


근래 나오는 [뉴 타입] 룰은 이런 마스터의 사전 준비를 줄이고 플레이 중에 이야기를 같이 만들어가는 쪽이 많습니다. [던전월드], [아포칼립스 월드], [피아스코], [페이트 코어], [포도원의 개들] 같은 룰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뉴 타입] 룰은 "마스터가 미리 스토리를 정해두지 말라"고 해요. 마스터는 흥미로운 일이 터질 무대(배경)만 준비하고, 플레이어가 캐릭터가 움직이며 어떻게 전개되나 보는 것입니다. 음악으로 말하면 즉흥 연주인 셈이죠. 


[뉴 타입] 룰은 시나리오 준비 부담은 적지만, 플레이 중에 나오는 소재를 즉석에서 활용하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숨이 찰 듯한 압박감을 받기도 한데, 익숙해지면 꽤 자유롭습니다. 마스터가 미리 정해둔 데 매이지 않아서 플레이어도 진행이나 설정에 대해 직접 의견을 내기 좋기도 하고요. 플레이어가 준비된 스토리를 따라가며 '감상'하기보다, 이야기 '창작'을 함께 하는 재미가 강조돼요.


- [올드 타입] 룰의 예: D&D, 로그 호라이즌, 크툴루의 부름, 새비지월드, (13시대), (누메네라), (이어리니안의 유산) 등.

- [뉴 타입] 룰의 예: 던전월드 등 AWE 시스템, 피아스코, 페이트, 포도원의 개들, 안방극장 대모험 등.


* [올드 타입]과 [뉴 타입]을 구분하자면, 이 시스템에선 마스터가 시나리오를 세세하게 짜고 그대로 진행하는 쪽인지 어떤지 살펴보면 됩니다. 13시대나 누메네라, 이어리니안의 유산 같은 경우, 시나리오를 짜긴 하지만 진행에 유연성을 발휘할 폭이 많은 편입니다. 물론 어떤 시스템이든 팀에 따라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있고요. 



(2) 룰의 적용이 세세하고 엄밀한가?: [이과식 룰] vs. [문과식 룰] 


두번째로 살펴볼 특징은, 룰의 적용이 얼마나 세세하고 엄밀한지입니다. Dungeons & Dragons를 비롯한 전통적인 RPG 룰은 각각의 상황, 행동을 다루는 세세한 룰과 데이터가 있고 이게 맞물려 하나의 체계를 이루곤 합니다. 특히 전투 부분에서 정교한 룰 메카닉과 데이터를 갖춘 경우가 많아요.


반면 근래에 나오는 RPG 시스템 중엔, 룰의 문구와 해석이 좀더 폭넓고 추상적인 [문과식] 룰도 있습니다. 이런 룰은 판정 결과로 일어나는 결과가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기보다, 플레이 속 서술에 기반해 적용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팀의 공감대와 합의에 더 의존하는 편입니다. 앞선 [이과식] 룰이 수치 중심 룰이라면, [문과식] 룰은 서술 중심 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한 쪽에만 익숙하면 다른 데 적응하기 힘들 수 있어요. [이과식 룰]에 익숙한 사람이 보면 [문과식 룰]은 너무 부실하고 모호한 시스템처럼 보입니다. 반면 [문과식 룰]에 익숙한 사람은 세세한 규정을 갖춘 [이과식 룰]이 너무 빡빡하고 까다롭게 느껴질 테고요. 룰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스타일로 즐기는 게 정답입니다. 


한편 요즘 나오는 시스템 중에는 양쪽 방식을 절충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3시대 같으면 전투 룰은 [이과식 룰]처럼 엄밀히 정해져 있지만, 전투 외의 부분(표상이나 출신 판정)은 [문과식 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과식 룰]의 예: D&D, 로그 호라이즌, 크툴루의 부름, GURPS, 새비지월드 등.

- [문과식 룰]의 예: 던전월드 등 AWE 시스템, 페이트, 안방극장 대모험 등.

- 절충형 룰의 예: 13시대, 누메네라, 이어리니안의 유산 등.



(3) 그외의 특징 분류


* 전투/워게임 중심 vs. 이야기 중심

: D&D나 로그 호라이즌, 새비지월드 같은 RPG는 전투를 워게임처럼 다루는데 치중하는 편입니다. 한편 던전월드의 경우 플레이 속에 전투 장면은 많이 나오지만 이를 워게임처럼 처리하진 않아요. 오히려 영화처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치중하는 이야기 중심 룰입니다. 전투 장면을 '워게임'식으로 다루는지 아닌지로 나눠보면 좋습니다.


* 장편에 좋은 룰 vs. 단편에 좋은 룰

: 대부분의 TRPG 룰은 단편보다 장편 플레이에 맞춰져 있습니다. 특히 캐릭터가 성장하며 세상와 인연이 쌓여가는 룰들이 그렇습니다. 던전월드 등을 포함한 판타지 모험물 장르는 대개 이런 장편 플레이가 어울리지요. 한편 단편 전용 룰로 피아스코, 평온한 한 해, 장밋빛 입맞춤 같은 인디 룰이 있고요. 크툴루의 부름도 단편으로 돌리기 좋은 편입니다.





3. 맺음말 


초보자한테 추천할 온라인 게임이라고 해도 오버워치나 LoL, WoW, 스타크래프트, 하스스톤 등 온갖 종류가 있고, 게이머의 성향에 맞는 걸 고르는 게 중요하겠죠. 그처럼 TRPG 시스템을 고를 때도 그 특징과 성향을 알아두는 게 유용합니다. 그냥 보면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지만 겁내지 말고 하나씩 도전하고 경험해보세요. 플레이를 해보고 나면, 위에서 얘기한 TRPG 시스템의 성향이 어떤 얘긴지 좀더 와닿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자신이 TRPG에 대해 기대하는 이미지, 형태에 맞춰 고르면 됩니다. "TRPG라면 모름지기 마스터가 척척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지도 그리고 전투 벌이는 거지..."라고 알고 있다면 D&D, 13시대, 로그 호라이즌 같은 [올드 타입]/[이과식]/[전투 중심] 룰로 시작하면 되겠죠. "나는 전투나 복잡한 룰은 싫어. 좀더 인물과 드라마가 강조되는 쪽이 좋겠어."라고 하면 피아스코, 안방극장 대모험, 페이트 코어 같은 [뉴 타입]/[문과식]/[이야기 중심] 룰이 더 맞을 겁니다. 


각각의 TRPG 룰에 대해선 이후에 "OOO로 시작하는 TRPG 입문" 시리즈로 하나씩 다뤄볼게요. 각 TRPG 시스템의 성향과 특색을 짚으면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은지 얘기해보려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p.s. 위의 [올드 타입], [뉴 타입]이나 [이과식], [문과식]이란 용어는 제가 편의상 붙인 명칭입니다. 후자는 [공학적 룰](mechanistic system), [문학적 룰](narrative system) 라는 게 더 정확할 듯 한데 어려워보여서 [이과식], [문과식]으로 퉁친 감이 있네요. 좀더 나은 명칭이 있다면 의견 주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