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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기사/특별 코너

당신의 캐릭터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by 라이스미스)

by 라이스미스(@Karaghiozis)


예전에는 TRPG를 하면서 캐릭터로 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내가 연출할 수 있는 것의 괴리가 크더라도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결국 내 몫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아니면 쓰레기통에 투척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TRPG 플레이어가 캐릭터와 동일한 기능이나 지식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고 대부분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선언을 통한 연출은 전혀 다른 문제다ㅡ그것은 작가나 각본가, 영상 감독, 때로는 게임 디자이너의 영역에 가깝다. 당신의 캐릭터가 마법사라고 당신이 직접 손에서 파이어볼을 쏠 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파이어볼이 어떻게 생겼고 날아가서 폭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전략을 잘못 세워서 당신의 동료 캐릭터들을 몰살시킬지도 모르고, 파이어볼을 묘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도 모두 놓치게 될 것이다. TRPG 플레이어는 자신이 고른 소재에 대해 상상력과 대화의 기술을 최대한 발휘할 필요가 있다.


"왜 그래야 하나요?" 라고 묻는다면, "당신이 그걸 골랐기 때문에"라고 대답하겠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정말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 그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던 것도 아니다 (TRPG 규칙은 엄청나게 많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당신은 당신이 고른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TRPG는 다른 놀이에 비해 그 책임의 영역이 훨씬 클 뿐이다.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권리가 크다는 뜻도 된다. 다른 놀이에서 당신은 대체로 보드게임의 말과 규칙처럼 이미 준비된 도구들을 사용해야 하며 변경과 추가가 쉽지 않다. TRPG에서, 당신은 거대한 <세계 도구> 한 세트를 통째로 받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원한다면 다른 세계를 써도 된다). 


나는 TRPG에 한계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놀이에 비해 한계선이 엄청나게 멀리, 크게 그어져 있으며 그 안의 도구들도 유동적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대단한 장점이지만 선 안에서 길을 잃기 쉽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게임 규칙은 참가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어떤 도구를 써서 어떤 결과를 끌어낼지는 참가자 자신에게 달렸다. 취향 외에도 사전 지식, 열의,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등의 중요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캐릭터를 만든다면, 당신이 남긴 공백을 다른 사람이 표현하거나 아니면 그냥 버려둘 것이다. 그런데 TRPG에는 앞서 말했듯이 다른 놀이에 비해 수많은 도구가 존재하기에, 당신이 원래 의도하거나 예상한 결과가 아닌 다른 결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TRPG를 할 때 당신은 원하는 것을 행하라Tu was du willst고 새겨진 <끝없는 이야기>(미하엘 엔데 作)의 부적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당신의 부적을 떠넘기거나 내팽개치지 말자. 그건 당신 것이니까.




WOD 마스터링을 하시는 라이스미스님께서 트위터에 올린 얘기를 담아왔습니다. [The RPGist]에 싣도록 허락해주시고 덧붙여 글을 다듬어주신 라이스미스님께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편집자 주) 한편, 천승민님이 쓰신 [캐릭터에 대한 선망과 실행의 차이]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쪽도 함께 읽으시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아래는 일부분 인용.


나는 이걸 '지식부족'과 '준비부족'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마스터가 시나리오와 캠패인을 준비하는 건 당연하면서 플레이어가 캐릭터에 관해서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마스터도 캠패인의 소재로 삼은 것들에 대해서 아는게 없고 시나리오를 어느정도 어떤 형식으로든 사전준비하지 않으면 시나리오는 매우 피상적, 기계적으로 변한다.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캐릭터에 대한 선망과 실행의 차이] by 천승민



p.s.

라이스미스님이 영화배우들의 "메소드 연기"에 대한 오해를 타파하는 기사를 소개하면서 아래와 같이 언급한 바도 있지요. 플레이어가 온전히 캐릭터에 대해 통제력을 갖고 이를 책임지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익스트림 무비 기사 자체도 읽을만하고요). 





  1. RT) TRPG를 할 때도 참고할 만 합니다. 자신을 잊고 캐릭터에 몰입한다고 좋은 플레이, 재미있는 플레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분리가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해 필수적이죠.

  2.   님이 리트윗했습니다.

    메소드 연기에 대한 오해와 이를 거부하는 배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