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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강좌/칼럼

당신의 RPG가 실패하는 3가지 이유.

by 애스디


제가 전에 썼던 글 중에서 가장 반향이 컸던 글인 듯 합니다 (글을 독하게 써야 반응이 좋은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튼 이곳에도 다시 올립니다.




다소 공격적인 어조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날카롭게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당신의 RPG가 실패하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당신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당신의 팀원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만일 모두가 성실한 데도 플레이가 잘 되지 않는다면, 서로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당신은 성실합니까?


* 당신은 플레이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합니까?

아마 당신은 틀림없이 지각, 결석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을 겁니다. 변명은 필요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팀에서 당신의 출석율 순위를 매기기 바랍니다. 남들은 당신만큼 급한 사정이 없어서 성실히 제 시간에 출석하는 걸까요? 열정이 있는데도 출석율이 낮다면, 너무 무리해서 플레이를 벌이고 있는 건 아닌가요?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플레이에 참여해야 합니다.


* 당신은 룰북을 샀습니까? 읽었습니까? 익혔습니까?

룰북은 안 샀다고요? 왜요? 아, 돈이 없어서요. 그럼 마스터랑 다른 팀원은 다들 넉넉해서 룰북을 샀나 보군요. 그럼 빌려 읽으려고라도 하셨나요? 아니라면 애초에 읽을 생각이 있긴 했나요? 봐도 잘 모르겠다고요? 주변에 물어보거나 찾아보는데 노력은 기울였습니까? 당장은 룰을 잘 모르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근데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럴 마음이 없으면 그만두십시오.


* 당신은 플레이를 준비합니까?

일주일 만에 다시 모이기 전에, 지난 플레이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체크해봤나요? 업데이트 된 시트, 주사위, 필기도구 (OR이라면 시트, 지난 플레이 내용, 채팅 프로그램 등)는 준비했습니까? 다른 약속이나 식사, 전화, 일들로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미리 정리해 두었습니까? 


* 당신은 플레이에 집중합니까?

(OR이라면) 플레이 창 외에 무슨 창이 떠있습니까? 그건 왜 떠 있을까요? 당신이 마스터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플레이에 참가하는 중에도 똑같이 해도 괜찮을까요? 아, 지금은 자기가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고요... 그럼 다른 사람도 당신 캐릭터가 나오는 장면에선 딴짓하고 있겠군요.

(TR이라면) 간식이나 만화책, 미니어쳐, 일러스트 따위에 정신이 팔려 있진 않습니까? 다른 관심사나 걱정, 혹은 집에 돌아가서 할 일들에 골몰한 건 아닙니까?


* 당신은 플레이를 진지하게 생각합니까?

캐릭터 이름, 설정, 행동 따위를 너무 장난스럽게 하고 있진 않습니까? 플레이보다 잡담과 농담에 심취해 흐름을 너무 많이 끊고 있는 건 아닙니까? 웃음은 플레이를 즐겁게 하는 양념이지만, 다른 동료들이 그때문에 부담 느끼고 힘들어 한다면 자제해야 합니다.


* 당신은 다른 팀원과 마스터를 신경써줍니까?

플레이 중에 혹 누군가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지 신경쓰고 있습니까? 혹 마스터나 다른 팀원이 곤란해하거나 반대하는데,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진 않습니까? 다른 동료들의 캐릭터(PC와 NPC 모두)에 주의를 기울이며 공감하고 있습니까? 캐릭터를 서로 살려주고 플레이 내용을 깊이 음미할 여유를 갖고 있습니까?

플레이 후에는 그저 자기 일 때문에 얼른 자리를 뜨기 바쁩니까? 그날 플레이 내용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빴나 되돌아보고 피드백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에 대해 Yes라고 대답했다면,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2. 당신의 팀원들은 성실합니까?


다시금 묻습니다. 당신은 성실합니까? 당신의 팀이 깨졌을 때, 당신은 가능하면 다음 기회에라도 같이 플레이하고 싶은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 눈의 티끌을 탓하기 전에,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야 합니다. 당신의 팀원들이 성실하지 않은 것은, 혹 당신도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럼 팀원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정말 성실한데 팀원들 중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왜 당신은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습니까? 그를 동료로 받은 당신의 책임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득해서 돕기 바랍니다. 당신이 상처입는 문제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이라면, 듣고 고칠 수도 있으니까요.


혹 참을 수 있다면 참으십시오. 시간을 두면 나아질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들다면 떠나십시오. 세상엔 아직 RPG인이 많이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을 만나긴 어려울 수 있지만, 만나면 훨씬 나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3. 당신과 팀원 모두가 성실합니까? 근데도 문제가 끊이지 않습니까?


당신과 팀원 모두가 성실합니다. 그런데도 뭔가 계속 삐걱거리고 플레이가 힘겹습니까? 

어느 팀이나 가끔은 때로 힘들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가장 잘된 플레이였다고 평하는 캠페인에서도 몇번 플레이가 잘 안되서 고민하고 때론 살짝 그만둘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동료를 신뢰할 수 있다면, 같이 믿고 문제를 풀어가보기 바랍니다. RPG에서 진정한 실력은,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서로를 포용하고 창조력과 시너지를 극대화해서 멋진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풀이되고 근원적인 것이라면, 서로가 너무 맞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RPG가 어떤 것인지 달라서일 수 있습니다. 각자 추구하는 플레이 방향, 스타일, 내용이 너무 달라서일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면 갈라서십시오.


정말 모두 성실한 사람이 모였었더라면, 이렇게 갈라서더라도 서로를 두고두고 욕하고 헐뜯는 일은 드물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뭔가 자극받고 배울 점은 남을 터입니다. 언젠가는 좀더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고요.




에필로그


RPG계가 바뀐지 오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오래가는 팀, 믿고 마음 줄 동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만나고 흩어지면서, 서로가 낯선 떠돌이 '용병'들의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고, 그래서 더더욱 알고 지내는 커뮤니티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어차피 다시 만날지 모를 인연,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탓하기도 쉽습니다. 신뢰와 의리는 사라졌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RPG는 없습니다. 당신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