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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리뷰/활용

던전월드 마스터 강좌 #1: 던전월드에 관한 3가지 오해.

by 애스디


던전월드가 나온 지도 어느덧 일 년 반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던전월드로 RPG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나왔지요. 한데 주변을 보면, 던전월드로 장편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팀은 드물고, 개그와 드립 위주의 단편 플레이가 많은 듯한 인상입니다. 더불어 던전월드를 하는 이들 중에서 종종 매너리즘이나 한계를 느끼는 분들도 제법 있는 듯 하고요. 던전월드가 원래 쉽게 질리는 시시한 룰인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던전월드를 제대로 플레이하지 않은 걸까요? 


여기선 던전월드 플레이에 대해 갖기 쉬운 세 가지 오해를 살펴보고 이를 부숴보고자 합니다.




1.  던전월드는 단편 플레이에 좋은 룰이다.


첫번째 오해는 “던전월드는 단편, 특히 즉석 플레이에 좋은 룰이다” 입니다. 던전월드가 쉬운 룰이고, 즉석에서 곧바로 플레이를 시작하기 쉬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던전월드의 참맛은 단편 플레이가 아니라 장편 캠페인을 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던전월드 룰의 대부분은 중장편 연작 플레이에 맞춰져 있습니다. 1레벨에서 10레벨까지 성장해가며, 캐릭터는 세계를 탐험하며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내고 중요한 적을 극복하고 기억에 남는 보물을 얻습니다 (세션 종료 액션 참조). 플레이가 이어질수록 세상과, 동료와 ‘인연’이 깊어져가는 것입니다. [국면]을 거치면서 PC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몇 번이고 구원해내는 영웅이 됩니다. 이건 단편 플레이에서 맛볼 수가 없는 거지요.


사실 던전월드의 [첫 세션]은 그 1회 플레이의 즐거움보다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이 세상이 어떤 곳인가 함께 만들어가고 이후 플레이의 토대를 마련하는 ‘준비’로서의 성격이 짙습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가벼울 수 밖에 없고, 단편 플레이만 되풀이해서는 깊이있는 플레이를 맛보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던전월드의 참맛을 보고 싶거든, 중장편 플레이를 하세요. 쭉 이어질 장편 캠페인이라고 하면 참가자들도 좀더 진지하게 캐릭터를 준비하고 참여할 터입니다 (하루 하고 버릴 게 아니니까요). 그저 개그와 드립이 난무하는 플레이에 지쳤다면, 팀원들과 뜻을 모아 한번 제대로 된 장편 모험물을 해보세요.




2. 던전월드 마스터링은 준비를 안해도 된다.


던전월드 룰북은 마스터보고 이야기를 준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얘기를 아예 준비를 하지 말라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던전월드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그저 즉흥적으로 플레이어와 마스터의 애드립을 살려서 진행하는 룰이라는 것이죠.


던전월드 룰북이 정말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첫 세션] 이후로 마스터는 [국면]을 통해 플레이를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국면] 룰은 캐릭터가 마주칠 세상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플레이 속에 역동적으로 펼쳐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국면]이야말로 던전월드 장편 캠페인 운영의 정수라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던전월드의 마스터는 통상적인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지만, 대신 [국면]을 준비하는 겁니다. 


[국면] 룰이 규정하는 범위 내에선, 마스터가 원하는 만큼 세부적인 데까지 플레이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PC가 상대해야 할 적과 문제들(위험요소), 적의 목표와 전략(재앙, 흉조와 액션), 주요 등장인물 등이 포함됩니다. 이에 따라 플레이 중에 나올만한 괴물 등도 준비하게 되고요. 이 정도면 일반적인 시나리오에 필요한 “컨텐츠”는 이미 대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만 PC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할 지만 정해두지 않은 거지요! 


던전월드는 기존의 고전적인 RPG 시스템과 달리 플롯 중심의 시나리오랑 맞지 않을 뿐이지, 플레이 자체를 준비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국면]을 준비하지 않고 플레이에 들어가면, 그때그때 나오는 애드립에 휩쓸려가다가 예능 같은 플레이로 끝마치고 말겠죠. 그것도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던전월드로도 훨씬 짜임새 있고 서사적인 모험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던전월드가 애초에 지향하는 바고요. 




3. 던전월드는 룰을 무시하고 플레이해도 된다.


던전월드의 핵심 규칙, 특히 플레이어가 익힐 규칙은 매우 가볍고 유연해서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룰을 적당히 손보거나 변용해서 플레이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붙어서, 적당히 그냥 +능력치 판정 하고 결과 보고 해석하는 게 던전월드 룰의 전부인 양 생각하기 쉽습니다.


던전월드의 판정 룰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지만 던전월드에는 단순히 판정의 성패 외에도 다른 것들을 다루는 다양한 룰이 있습니다. 흔히 무시되는 예로 장비나 괴물 등에 붙는 ‘태그’도 룰의 일부입니다. 마스터와 플레이어는 이 태그를 이야기 속 현실에 반영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그냥 수치의 유불리만 따지면, 던전월드만큼 심심한 RPG도 없습니다. 최적화 빌딩을 하면 놀고 싶다면, 다른 RPG를 해야지요.

 

더욱 많이 간과되는 부분은, 마스터링에 관한 룰입니다. 던전월드는 마스터링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아주 명시적인 지침과 규칙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마스터를 시작할 때 대충 스윽 훑어보곤,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스터링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던전월드는 그렇게 자기 맘대로 마스터링을 하면 안됩니다. 2d6 판정과 그 해석이 룰의 전부가 아닙니다. 던전월드 마스터에겐 강령과 원칙, 액션이 정해져 있습니다. 플레이를 그냥 하던 대로 하지 마시고, 플레이가 끝나고 나면 자기가 이 강령과 원칙, 액션에 맞게 마스터링을 했나 꼭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곧잘 무시하는 강령이나 원칙, 액션은 없는지? 저는 제가 마스터 액션 중에서 빠뜨리는 쪽은 없나 이런 식으로 확인해보곤 했었습니다. 




* 맺음말


던전월드를 잘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한 번 생각을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초심의 눈으로 돌아가서, 던전월드 룰북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플레이를 하라는지 귀기울여 보세요. 그리고 자기에게 편한 대로, 하던 대로가 아니라, 룰북이 말하는 대로 플레이를 해보세요 (던전월드 가이드도 꼭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그러면 던전월드로 훨씬 깊이 있고 풍부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기회가 닿으면, 앞으로 던전월드 마스터링의 실제적인 부분을 좀더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혹 특히 궁금한 점이나 요청하고 싶은 점 있으면 의견 부탁드릴게요. 




p.s. 던전월드 장편 플레이 사례를 찾으신다면, 제가 진행했던 캠페인 [그레고르 사가]를 참고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국면 1. "어둠의 숲": http://www.rpg-session.net/bbs/111059

국면 2. "해드리드의 밤": http://www.rpg-session.net/bbs/113054

국면 3. "대천사의 문": http://www.rpg-session.net/bbs/114764

국면 4. "부활하는 불사의 왕": http://www.rpg-session.net/bbs/117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