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리뷰/활용

균형잡힌 GURPS 캐릭터 만드는 법

애스디 2015. 3. 16. 00:02

by 애스디


제목은 거창합니다만, 제 나름대로 GURPS 캐릭터 만들 때의 가이드라인 내지 팁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GURPS가 자유로운 포인트 배분제로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워낙 선택할 장점/단점, 기능의 폭이 다양해서, 초보자들은 감을 잡기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사실 하다보면 알게 되는 뻔한 내용입니다만, 그런 부분도 제각각 다를 수 있으니 보시고 나서 의견 주시면 좋겠고요.


아래 내용은 우선 흔히  플레이하는 150~300 CP 범위의, 초상능력이 비교적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플레이를 가정했습니다. 




1. 기본 원칙



- 선컨셉 후룰북


: 캐릭터 컨셉을 먼저 뚜렷하게 정하고, 그 다음에 룰을 적용해 이를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냥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룰북에서 적당해보이는 장점, 단점, 기능 등을 조합하다 보면, 캐릭터 이미지가 일관되지 않고 각각의 특성이 따로 놀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이 한 눈에 알아보기도 어렵고요. 또한, 원래 컨셉/역할에 꼭 필요한 요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컨셉은 그냥 캐릭터 배경 스토리와는 다릅니다. 캐릭터를 한 마디로 압축시킨 표현이자, 그 인물의 핵심 개념이어야 합니다. 대개 (직업적인 구별 + 캐릭터 만의 개성을 나타내는 수식어) 가 되는 일이 흔합니다. 예를 들어, "방패 역할의 튼튼한 전사"(역할: 전사, 개성: 튼튼함, 방패 역할), "이상주의자 신참 형사"(역할: 형사, 개성: 이상주의자, 신참) 식으로요. 이렇게 명확한 컨셉을 뼈대로 두고 살을 붙여가는 것이 좋습니다. 



- 플레이하기 좋은 캐릭터를 만든다. 

: 자기 보기에 마음드는 쪽으로만 캐릭터를 만들다 보면, 정작 플레이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왕왕 생깁니다. 정작 플레이에는 잘 나오지도 않을 부분에 잔뜩 공을 들이는 식으로요. 플레이에서 이 캐릭터가 어떤 활동/역할을 할지 명확하게 생각해두고,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캠페인에 따라 필요한 최소한의 전투 능력을 갖추는 등으로요. 



- 되도록 간단하게.

: GURPS의 캐릭터 제작은 워낙 선택의 폭이 넓다보니, 룰북을 보다 보면 캐릭터에 어울린다 싶으면 이것저것 다 넣고 싶은 충동이 들기 쉽습니다. 특히 장점/단점이나 기능을 너무 많이 집어넣는 일이 많죠. 하지만 그런 세부항목이 늘어날수록 자신도, 마스터를 비롯한 다른 팀원도 캐릭터를 한 눈에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관련된 것은 모두 다 넣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고, 핵심 사항만을 남기는 게 낫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특성치와 핵심 기능에 주력하고, 장/단점이나 배경 기능은 줄이는 게 좋고요.



 

2. CP 배분


특성치, 장점, 단점, 기능에 각각 얼마만큼의 CP를 배분할지 대충 잡아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주로 취하는 기준은, 장점 CP를 단점 CP랑 비슷하거나 약간 높게 잡고, 원래 캐릭터 제작 CP 중 50CP 안팎을 기능에, 나머지를 특성치에 넣는 쪽입니다. 이렇게 하면 대체로 기본 특성치에 주력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이는 이후 캐릭터가 성장해갈 여지를 두고, 장/단점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을 일부러 제한하기 위해서입니다. 특성치와 기능 위주로 캐릭터를 짜는게, 빠르고 쉽기도 하고요.


각 CP 기준으론 대충 아래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단점 제한이 -40CP보다 높더라도, 보통 -40 정도까지만 잡는게 "인간적"이고, 플레이에도 적절합니다).


* 150CP: 특성치 100 CP 내외 / 장점 45~55 CP / 단점+버릇 -45 CP / 기능 40~50 CP

* 200CP: 특성치 120~150 CP / 장점 45~75 CP / 단점+버릇 -45 CP / 기능 40~60 CP

* 250CP: 특성치 140~160 CP / 장점 60~90 CP / 단점+버릇 -45 CP / 기능 60~80 CP

* 300CP: 특성치 150~200 CP / 장점 60~120 CP / 단점+버릇 -45 CP / 기능 60~100 CP


위는 비교적 사회적 자산, 기반이 적은 떠돌이 모험자형 캐릭터 기준입니다 (즉, 본신의 능력에 집중된 경우). 캐릭터 개인 자체의 능력보다 [재산], [지위], [법집행권], [후견인] 등 사회적 기반이 많은 캐릭터는 특성치를 좀더 줄이고 장점에 투자해도 좋습니다. 초상능력이 중요한 캐릭터 같은 경우도 비슷하게 조정되고요. [마법재능] 기반 마법사의 경우도, 특성치를 다소 줄이고 대신 [마법 재능]과 주문 기능에 투자해야 할 겁니다 (편하게 하자면 IQ+마법 재능을 16~17 정도로 우선 잡아놓고 시작하세요). 캐릭터북 p.12의 캐릭터 유형 란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특성치


제가 캐릭터 시트에서 가장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특성치와 기능입니다. 특성치는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고, 기능은 좀더 구체적으로 캐릭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은 그보다 장점 쇼핑에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척 보기에 그럴 듯 해보이는 게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 특성치를 10 아래로 낮추지 마세요: 낮춰도 되는 특성치는 ST 정도이고, 그나마 8~9 정도가 한계입니다. RPG 캐릭터들은 대개 다양한 위험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특성치가 대부분 평균 이상 되어야 합니다.


- 극단적으로 높은 특성치도 피하십시오: 위와 같은 이유로, 특성치 하나만 잔뜩 올리는 것보다 어느 정도 고르게 올리는 편이 좋습니다. 캠페인에 따라 대략적인 특성치의 상한선이 있을 터입니다 (사실적인 캠페인이라면 14~15, 좀더 영웅적이라면 16 정도).



캐릭터 컨셉을 바탕으로 특성치를 잡되, 룰북에 나온 대로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위에서 CP 예산을 대략 잡았으니 수월할 거에요.


8~9  : 평균 미만. 표준 이내지만 IQ/DX/HT가 10 미만이면 모험은 곤란.

10    : 평균. 보통 인간은 10만 갖고도 잘 삽니다.

11-12: 평균 이상. 남보다 힘이 센 편, 날렵한 편, 머리가 좋은 편. 보통 군인/직업인 수준.

13-14: 뚜렷한 재능. 꿈틀거리는 근육, 고양이 같은 날렵함, 영재 수준의 지능 등.

         이 수준의 특성치는 캐릭터의 개성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15~  : 인생을 좌우하는 재능. 역도, 체조, 마라톤 대표선수 수준, 역대급 천재 등.




4. 장점/단점


위에서 잡은 CP 예산을 기준으로 고르면 됩니다. 빠듯하게 느껴져도, 되도록 장점/단점은 핵심적인 것 몇 개만 두는 게 낫습니다.


- 사회적 장점/단점을 먼저 신경쓰십시오

: 캐릭터 본신의 능력에만 치중하다보면, 정작 캐릭터 배경 상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회적 배경 상의 장점/단점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 [지위], [재산], [계급], [법집행권], [후견인], [의무], [낮은/높은 TL], [사제자격], [천대계층], 언어능력 등). 캐릭터를 만들고 나서도 한번 더 확인해보는게 좋습니다.


- 장단점의 "이름"이 아니라 설명을 통해 파악하십시오

: 그냥 이름만 보고 이런이런 장점/단점이겠거니 하고 골랐다가, 정작 자기 생각과 다른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히 GURPS의 정신적 단점들은 보통 생각하는 개념보다 심각한 수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룰북의 설명을 차근차근 읽어보고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세요 (원래 단점은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면, 버릇으로 낮춰서 넣는 것도 방법입니다). 해당 장단점을 서로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마스터와 이야기 나누고, 캐릭터에 맞춰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가다듬는 게 더욱 좋습니다.


- 캐릭터 컨셉을 중심으로 선택하십시오

: 현란한 장/단점 목록을 보다 보면, 눈에 띄는 대로 넣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습니다. 마음이 끌린다고 다 고르지 말고, 앞서 정한 캐릭터 컨셉에 비추어 딱 어울리는 것만 고르세요. 장단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오히려 캐릭터의 인상이 모호해지고 이해불능의 시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앞서 CP 예산에서 장/단점의 비중을 일부러 적게 잡은 것이기도 합니다.




5. 기능


기능은 캐릭터가 실제로 어떤 것을 배웠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냐를 나타냅니다. 기능은 캐릭터가 PC들 중에서 맡는 역할을 결정 짓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죠. 기능의 총 갯수는 10~20개 안팎이 적절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갖춘 고 CP의 유능한 캐릭터라면 좀더 많아질 수도 있고요.


- 캠페인에서 PC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고려하십시오: 플레이 내용에 따라 PC 전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염두에 두세요. 예를 들어, 괴물을 때려잡는 환타지 모험물이라면, 당연히 모두 기본적인 전투 능력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자기 방어는 할 수 있을 정도라도). 흔히 이쪽에는 전투/무기 기능, [은밀행동] 등이 포함됩니다 (전쟁물이라면 [군인] 등). 


- PC 일행에서 역할 분담을 고려하십시오: PC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능이 있는 반면, 각각 PC들마다의 역할/포지션도 있습니다. 전투 능력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근접전, 누군가는 배후에서 저격, 누군가는 마법으로 지원 등으로 나눠질 수 있고요. 캐릭터를 만들기 앞서, 플레이어 전원이 함께 모여 캐릭터 컨셉을 토의하고 각자 자기 캐릭터의 역할/포지션을 의논하기 바랍니다. 사실 이 부분은 캐릭터 컨셉 단계부터 신경써야 하지요. 룰북 p.12의 캐릭터 유형과 GURPS 기능 분류를 참고하세요.


- PC가 받은 학습, 훈련과 경험을 고려하십시오: 기능은 캐릭터가 후천적으로 익힌 기술과 지식을 나타내므로, PC가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과 교육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입니다. 


- 기능의 "이름"만이 아니라 설명을 통해 파악하십시오: 장단점과 마찬가지로, 기능의 이름만으로는 실제 개념과 달리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기능의 설명을 면밀히 읽어보고 플레이 중에 어떻게 적용, 활용될 지 생각해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저는 아래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기능을 정리하는 편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나가면서 기능을 채워가면 수월합니다. 나중에 시트에 정리하기도 좋고요. 


- 전투 기능 / 신체적 기능 / 정신적 기능: 전투 관련 기능을 맨 처음 골라두고, 그 다음에 신체적 기능(DX/ST/HT 기반), 정신적 기능(IQ/지각력/의지력 기반) 순으로 정리해나가는 방법입니다. 전투 수치를 찾아보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핵심 기능 / 보조 기능 / 배경 기능: 캐릭터의 컨셉과 경험에 있어 핵심적인 기능부터 나타낼 수 있습니다. CP 기준으로 대충 아래와 같이 나눠볼 수 있습니다.


  1~2 CP: 배경 기능. 독학이나 경험 정도. 기초적 교육/훈련은 마침.

  2~4 CP: 보조 기능. 직업적/전문적 교육, 훈련을 어느 정도 받은 경우.

  4~8 CP: 핵심 기능. 직업적/전문적 교육 후에 다년간 경험을 쌓으며 전문가 수준으로 숙달.

  8CP+   : 비장의 특기. 인생의 적잖은 부분을 해당 기능에 투자.




6. 검토 및 마무리


이제 캐릭터가 거의 마무리 되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CP를 일일히 맞출 필요는 없고, 위 과정에 따라서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놓고 나서 CP가 얼마나 남거나 모자라는지 합산해보면 됩니다. 합계를 내보면 어느 쪽에 CP가 주로 많이 치우쳤는지 알 수 있을 거고요.


중요한 것은, 캐릭터 컨셉에 핵심적인 내용이 제대로 담기고 표현되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캐릭터의 핵심 컨셉이 충분히 반영되었다면, 남은 CP로 특성치나 기능을 더 올리거나, 후순위로 돌렸던 장점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반면 CP가 모자라다면, 핵심 컨셉이 아닌 부분을 쳐내가면 됩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닌 장점이나 배경 기능을 빼고, 특성치를 낮추는 등으로 조정하십시오.


이 단계에서 장비를 정하고(마스터가 허락하면, [고유장비] 장점으로 제법 든든하게 갖출 수 있죠) 전투 수치를 계산해 두세요. 그리고 캠페인에서 전투 난이도를 감안해서 적절한 수준인지 가늠해보시기 바랍니다. 잘 모르겠다면, 마스터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무엇보다 마스터와 다른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어 나머지를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앞서 얘기 했듯이 캐릭터 컨셉 구상 및 역할 분담 단계부터 충분히 이야기해두어야 하고,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도 수시로 물어보는 쪽이 좋습니다 (특성치 배분을 이 정도로 해도 괜찮을지, 이 단점을 넣어도 괜찮을지 등...). 


때로는 캐릭터 시트가 완성해놓고 나니, 정작 플레이와 잘 안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스터가 그런 부분을 지적할 수도 있고요. 만일 캐릭터의 원래 컨셉 자체가 잘못된 경우라면,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 만드는 것을 권합니다. 이미 만들어놓은 게 아깝더라도, 컨셉 단계에서 잘못된 거라면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GURPS 캐릭터 만드는 법을 정리하겠습니다. 사소한 팁을 들자면 더 많겠지만, 그런 부분들은 각 팀의 형편에 맞춰 물어가면서 하시는 게 낫다고 봅니다. 이 글에선 주로 규칙을 다루는 기술적인 부분 위주로 다뤘지만, 결국 팀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를 같이 구상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RPG는 팀원들과 같이 하는 놀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 참고자료


[생동감 있는 캐릭터 만들기](by 김성일), [초보 유저들이 시트 제작 과정에서 흔히 겪는 문제점들](by BlueRiver), [룰북에서 안 가르쳐주는 것들 - 겁스](by 천승민) 등도 참고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