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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리뷰/활용

[페이트 코어] 무엇을 면모로 다룰 것인가?

by 애스디


위시송님의 글 [‘기회 만들기’ 액션을 다른 액션에 결합시키기]를 보고, 페이트 코어에서 무엇을 [면모]로 두고 무엇을 그냥 플레이 속 현실로만 처리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페이트 코어 룰에 대한 나름의 분석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1. 면모 vs. 면모가 아닌 것


TRPG 플레이에서 다루는 온갖 사건과 상황은 이야기 속에서 현실로 존재합니다. 페이트 코어는 이러한 이야기 속 현실 중에서 일부를 면모로 다룹니다. 모든 걸 다 면모로 다루기는 번거로우니까요. 면모로 놓든 말든 이야기 속 현실로 존재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에 따라 특정한 행동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할 수 있고, 판정 난이도를 정하는 데도 관여하겠지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 속의 현실이 작용하는 것은 다른 TRPG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면모가 갖는 차이는 1) 룰에 따라 발현과 역발현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즉, 운명점을 써서 룰 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지요. 이렇게 보면 면모는 장면 내에서 특히 운명점을 써서 발현시킬 수 있는 요소를 표시하는 장치입니다. 또한 면모로 정해둠으로써, 2) 장면 속에서 흥미로운 요소를 팀이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가자들의 주의를 끌며 능동적으로 활용하라고 강조하는 표식인 셈이지요.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한 장면 속에서 무엇을 면모로 놓고 무엇을 그냥 암묵적으로 둘지는 다음에 따라 나눠볼 수 있습니다. 


- 이 장면에서 특히 관심 두고, 발현/역발현으로 쓰였으면 하는가?


애매한 경우엔 일단 면모로 정해둬도 상관 없을 것 같아요(p.84 면모의 창조와 발견). 그저 한 장면에 나오는 면모가 많아지면 일일히 신경쓰기 복잡해질 따름입니다.



2. 기회 만들기 vs. 극복


이처럼 면모, 특히 상황 면모는 각 장면을 어떻게 역동적으로 꾸밀지에 쓰일 재료에 해당합니다. [기회 만들기]는 플레이어들이 여기에 쓸 상황 면모(+공짜 발현)를 능동적으로 만드는 액션이지요. 이 장면에서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는 극복 액션이나 난관, 경쟁, 대결에 해당하고, 이를 어떤 과정으로 해결할지에 [기회 만들기]와 상황 면모가 쓰이는 셈입니다. 위시송님이 원글에서 언급했듯이 기회 만들기 액션은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다는 얘기와도 통합니다 (초여명 트위터 답변 참조). 


[극복] 액션이 [기회 만들기]와 달리 상황 면모(+공짜 발현)를 낳지 않는 것은, 극복 액션에 성공하는 것 자체로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후의 전개 자체에 성공/실패가 유효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굳이 면모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반면 [기회 만들기]로 만들어지는 상황 면모는 대개 그 장면, 길어도 한 세션 안에서만 지속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편 [극복] 액션으로 생기는 결과도, 원한다면 면모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캐릭터나 배경세계의 면모가 바뀌는 식으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반영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도 꼭 면모로 규정하지 않아도 이야기 속 현실로 쭉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면모로 써둔다면 모두가 이를 기억하고 이후의 전개에서 발현/역발현으로 활용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지요. 



3. 면모의 주관성과 활용


페이트 코어의 강점은 이렇게 주관식으로 면모를 정하고 활용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특히 위시송님이 [상황 면모 / 캐릭터 면모 활용하기]에서 강조했듯이, 굳이 발현되지 않아도 이야기 속 현실로서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플레이 속에서 말이 되기만 하면 어떤 행동이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식이라고 볼 수 있지요. 


반면, 관련된 판정 난이도와 효력 등을 플레이 속 맥락을 따라 알아서 정한다는 점에서, 팀의 합의에 모든 걸 맡긴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X를 하겠다고 하면, 마스터가 난이도를 알아서 정하고, X에 의한 효과도 이야기 속에 맞춰 적당히 정하는 식이니까요 (사실 이러한 판정과 룰 적용의 임의성은 기존 RPG 룰에도 내재해 있지만, 페이트 코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봅니다).


한편 페이트 코어는 이러한 임의성나 주사위 난수 폭을, 면모 발현으로 완충하는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수치 밸런스를 따지지 않아도, 여차할 때 면모 발현으로 커버할 수 있으면 별 문제없다...라는 식의 설계인 듯 해요. 이로써 서술 폭을 최대한 자유롭게 두면서 면모와 운명점으로 극적인 완급을 조정하는 게 페이트 코어가 지향하는 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플레이를 통해 어떤 장면과 면모가 나오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즐기는 것이지요.



* 맺음말


[페이트 코어]는 면모 룰을 바탕으로 백지 위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내는 식의 열린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면모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각 팀에서 플레이하면서 경험과 기준을 쌓아가야 할 듯 싶고요. [페이트 코어]는 근본적으로 팀 내의 소통에 기반하는 시스템이고, 면모는 플레이 속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공유하기 위한 도구로 봐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