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애스디
오랜만의 글이네요. 오늘은 "어떻게 해야 TRPG 플레이에서 캐릭터 설정이 의미를 갖고 살아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를 다뤄보려 합니다 (사실 초여명 출판사의 김성일님이 늘 하던 얘기의 반복입니다).
1. 플레이 속에 나오지 않는 설정은 죽은 설정이다.
일전에 [RPG에 좋은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 시리즈에서, RPG에 좋은 캐릭터는 실제 플레이에서 잘 활용되는 캐릭터라고 얘기한 적이 있지요. 캐릭터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레이 속에서 의미를 갖고 나타나는 설정이어야, 좋은 설정입니다. 아무리 공들이고 멋진 설정이라도 플레이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죽은 설정입니다. RPG에선 의미가 없는 설정입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RPG에선 플레이 속에서 드러나고 부각되는 설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플레이 속에서 일어난 일이어야 팀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플레이 전에 상세한 캐릭터 설정을 짜더라도, 글로만 적혀있는 설정을 읽고 이를 공유하긴 쉽지 않습니다. 저도 소설 주인공 같은 캐릭터 설정을 공들여 짰지만 결국 플레이 속에선 묻힌 적이 많고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2. 설정은 플레이 속 캐릭터의 언행으로 표출된다.
캐릭터 설정이 플레이 속에서 나타나는 가장 주된 방편은, 캐릭터 자신의 언행입니다. 플레이 속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캐릭터가 어떻게 반응하고 무슨 언행을 하는가, 이것이 그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롤플레이(Role-play)고요. 롤플레이의 목표는 다른 게 아니라,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규정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캐릭터 설정에 있어 이를 플레이 속에서 어떻게 표현해낼 지 고민해야 합니다. 플레이에서 실제로 드러나기 힘든 세세한 배경은 크게 신경쓰지 마세요. 그보다 이 캐릭터가 어떤 인물이고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주목하세요. 캐릭터가 분명한 동기와 성격을 갖고 움직이며 플레이 속에서 이로 인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할 때, 캐릭터의 면모가 모두에게 분명히 각인됩니다. 이렇게 인물 자체의 힘과 개성이 드러날 때, 캐릭터가 지닌 과거와 배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요.
3. 다른 인물 및 세상과 맺는 관계에 주목하자.
캐릭터의 인물됨은 다른 인물이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갖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기 쉽습니다. 적극적으로 다른 PC들, NPC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여하세요. 다른 인물과 어울리다 보면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특히, 캐릭터끼리 교감이나 대립이 일어날 때, 인물됨이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더불어 플레이 전에 만든 캐릭터 설정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그보다 플레이 속에서 캐릭터가 보인 모습과 플레이 속에서 맺은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캐릭터가 처음 구상과 달라지는 걸 꺼리지 마세요. RPG 플레이에선 늘 있는 일입니다. 그보다 플레이 흐름 속에서 캐릭터가 어떻게 나타나고 관계를 맺으며 변해가는지 역동적인 모습에 주목하세요. 자기도 예상치 못했던 캐릭터의 일면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4. 결론
플레이 전에 혼자 만든 설정은 엎어지거나 묻히기 마련입니다. 대신 플레이 속에서 캐릭터가 어떻게 표출되는지 집중하고 그 흐름을 최대한 살려내세요.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플레이 속에서 나타난 캐릭터의 모습이니까요. 적극적으로 주변 인물과 세상에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레 캐릭터가 자기 모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p.s: 이러한 측면에서 FATE의 면모나 GURPS의 장/단점 등은 고정해두기보다, 플레이 속에서 나타난 모습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쪽이 캐릭터 표현에 더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글.
- 캐릭터에 대한 선망과 실행의 차이 (천승민)
- 경험적 관점에서 본 "매력적인" 캐릭터 만들기 (천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