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는 플레이어의 무한한 자유가 보장된다"고 환상을 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선 TRPG의 자유도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TRPG가 컴퓨터 게임보다 더 자유롭다고 하면 이는 "게임 제작자가 상정해두지 않은 행동과 진행이 가능하다."라는 측면입니다. 컴퓨터 게임에서 시도할 수 있는 행동은, 제작자가 미리 만들어둔 커맨드뿐입니다. 반면 TRPG 플레이에선 원하는 대로 NPC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마스터가 예상치 않은 행동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TRPG는 컴퓨터 게임보다 더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TRPG이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자유가 더 제약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TRPG는 팀원 모두가 심상(fiction)을 공유하며 같이 진행하는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플레이는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내 캐릭터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자유가 있다"며 고집할 수만 없는 것입니다. 반면 GTA 같은 컴퓨터 게임은 싱글 플레이이므로, 혼자 무슨 깽판을 쳐도 상관 없죠. 이런 점에선 1인용 컴퓨터 게임이 TRPG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TRPG에서 각 참가자가 맡은 캐릭터는 플레이 속 픽션에 참여하는 방편일 뿐이지, 그 참가자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TRPG 플레이를 협주라고 본다면, 각자가 가진 악기(캐릭터)는 마음대로 독주하기 위한 게 아니라 함께 음악(플레이)을 만들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플레이에서 유의해야할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다른 참가자가 꺼리는 표현, 묘사, 발언을 피한다.
: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묘사, 종교/신념/가치관 면에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발언 등입니다. 플레이 특성상 이런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참가자 모두가 괜찮은지 늘 확인해야 합니다. 'X 카드' 규칙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 플레이 진행 상의 필요를 따라야 한다.
: 원래라면 할 법한 행동이라도, 플레이 진행 상 곤란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무 중에 혼자 도망친다든가, 동료와 대판 싸워서 헤어진다든가 등입니다. 이렇게 해도 지장이 없다면 괜찮지만, 진행 상 피해야 한다면 그에 맞춰야 합니다.
3) 플레이 속 세상과 인물에 대한 이해를 공유해야 한다.
: TRPG는 픽션 속의 세상과 인물을 나누어 맡아 진행하는 놀이입니다. 플레이 속 설정과 진행을 같이 공감하는 게 필수죠. 캐릭터 RP에 대해 다른 팀원이 이질감을 느낀다면 어떤 점에서 엇갈리는지 체크해보세요. 자기 캐릭터가 픽션 속에서 일관되고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RP입니다.
셋 다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TRPG의 자유도'라는 말을 앞세워 이런 점을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